타인의 글 + 나의 얘기/받아적는 시

10.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 김민정

연두- 2016. 9. 5. 10:32

* 김민정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중에서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지지난 겨울 경북 울진에서 돌을 주웠다

닭장 속에서 달걀을 꺼내듯

너는 조심스럽게 돌을 집어들었다

속살을 발리고 난 대게 다리 두 개가

V자 안테나처럼 돌의 양옆 모래 속에 꽂혀 있었다

눈사람의 몸통 같은 돌이었다

야호 하고 만세를 부르는 돌이었다

 

 

물을 채운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담그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냈는가 하면

물을 버린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놔두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내기도 했다

 

 

먹빛이었다가 흰빛이었다가

밤이었다가 낮이었다가

사과 쪼개듯 시간을 반토막 낼 줄 아는

유일한 칼날이 실은 돌이었다

네게 던져진 적은 없으나

네게 물려본 적은 있는 돌이었다

제모로 면도가 불필요해진 턱주가리처럼

밋밋한 남성성을 오래 쓰다듬게 해서

물이 나오게도 하는 돌이었다

 

 

한창때의 우리들이라면

없을 수 없는 물이잖아, 안그래?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울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이 시집을 내며 오은 시인에게 보낸 김민정 시인의 서명이 머리를 맴맴 돈다.

 

시집의 제목과 합쳐져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문장.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그럼에도 사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