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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글 + 나의 얘기/받아적는 시

20. 심야식당 / 박소란

*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에 실린 박소란 시인의 시


 

심야식당

 

박소란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한가지 궁금증이 오랫동안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칼국수를 잘 하는 집이 한 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오래된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지금도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칼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자그마한 탁자 위

어쩌다 흘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맵고 아린 순간, 순간들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虛氣는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은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이전에 인스타그램으로 올린 적 있던 시.

이 시를 읽을 때면 고운 백발의 노인이 떠오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어떤 순간은

사실 대단치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그런데 닦이지 않는 것들이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하니까요.

 

우리가 지나는 이 시간도 그렇게 기억이 될까요,

그렇다면

맵고 아리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맵고 아린 것이 강하게 남더라도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것들이 그것을 감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치국물보다는 칼국수 같기를,

그 칼국수 집 앞에서 기다리던 순간의 행복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