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에 실린 박소란 시인의 시
심야식당
박소란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한가지 궁금증이 오랫동안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칼국수를 잘 하는 집이 한 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오래된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지금도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칼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자그마한 탁자 위
어쩌다 흘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맵고 아린 순간, 순간들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虛氣는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은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이전에 인스타그램으로 올린 적 있던 시.
이 시를 읽을 때면 고운 백발의 노인이 떠오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어떤 순간은
사실 대단치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그런데 닦이지 않는 것들이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하니까요.
우리가 지나는 이 시간도 그렇게 기억이 될까요,
그렇다면
맵고 아리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맵고 아린 것이 강하게 남더라도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것들이 그것을 감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치국물보다는 칼국수 같기를,
그 칼국수 집 앞에서 기다리던 순간의 행복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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