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타인의 글 + 나의 얘기/받아적는 시

26. 환상의 빛 / 강성은

* 강성은 시인의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 중에서



환상의 빛



옛날 영화를 보다가

옛날 음악을 듣다가

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생각했다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에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너무 멀리 와버렸구나 생각했다


명백한 것은 너무나 명백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몇 세기 전의 사람을 사랑하고

몇 세기 전의 장면을 그리워하며

단 한 번의 여름을 보냈다 보냈을 뿐인데


내게서 일어난 적 없는 일들이

조용히 우거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눈 속에 빛이 가득해서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