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시인의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를 꼭 사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아직도 사지 못했다.
시집의 이름은 시의 제목이 아니라
바로 이 시, '아이디어'에서 따온 것인데,
누군가는 이 시집에서 가장 예쁜 시라고 말하기도 하더라.
아이디어
오은
한 줄기 빛은
한 줄기 빛
발아가 이루어지면
한 포기 난초와
한 떨기 장미로 피어난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엄습하는 것들을 사랑해
때때로 우리가 직접 나서서
그것들을 잡기도 하지
커피의 김과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커서는 껌뻑거리며 최면을 걸고
은밀하게 시작되는
한낮의 점성술
우리는 별처럼 빛나는 순간을 기다려
우리의 동공이, 우리의 동맥이
현장을 사로잡는 순간을 기다려
바르르 파르르
눈꺼풀을 털며
마지막 남은 한 줄기 빛을 울컥 토해내겠지
한 줄기 빛은
한 줄기 빛
땅 위로 봉긋
더욱 또렷하고 아름답게 피어나
원음보다 선명한 메아리처럼
우리는 분위기를 장악하며
돌아오기 위해 달아나지
모니터 속으로
키보드 위로
커서 앞으로
별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나는 현장에서 바야흐로 발아해
이 빛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포스트잇을 떼서 이마에 탁,
붙이고 침대 위로 뛰어드는 순간
타버린 팝콘을 쥐듯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
시인에게 그 이름은 뭐였을까?
나에게 그 이름은 무엇일까?
분위기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그 한 줄기 빛은 각각 무엇이라 불리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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