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미 썸네일형 리스트형 30. 어떤 삶의 가능성 / 안현미 * 안현미 시인의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중에서 어떤 삶의 가능성 스물두살 때 머리를 깎겠다고 전라도 장수에 간 적 있다 그곳엔 아주 아름다운 여승이 있었고 나와 함께 그곳에 머물던 경상도 아가씨는 훗날 운문사 강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돌아왔다 돌아와 한동안 무참함을 앓았다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되려는 중이었는데 내겐 거울도 지도도 없었고 그저 눈물뿐이었다 나는 나를 꺼내놓고 나를 벗고 싶었으나 끝내, 나는 나를 벗을 수 없었고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되려는 중이었는데 나는 감히 요절을 생각했으니 죄업은 무거웠으나 경기장 밖 미루나무는 무심으로 푸르렀고 그 무심함을 향해 새떼가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다른 차원의 시간이 열리고 있었다 업은 무거웠으나 그런 날이 있었다 더보기 이전 1 다음